스태그플레이션 초래했던 '에너지 무기화'…50년 만에 재현되나

이재원 기자 / 기사승인 : 2021-10-24 05: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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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천연가스 무기화 논란으로 소환된 1970년대 '오일 쇼크'
"연준, 인플레 통제력 상실 우려" vs "스태그플레이션까진 아냐"

스태그플레이션 초래했던 '에너지 무기화'…50년 만에 재현되나

러시아 천연가스 무기화 논란으로 소환된 1970년대 '오일 쇼크'

"연준, 인플레 통제력 상실 우려" vs "스태그플레이션까진 아냐" 


[강소기업일보=이재원 기자] =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와 함께 인플레이션 장기화 우려가 확산하면서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의 촉매제가 됐던 '에너지 무기화'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최근 화석연료 가격 폭등의 주요 원인으로 석탄을 둘러싼 중국과 호주 간 무역분쟁과 러시아의 천연가스 시세조종 의혹이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아랍 산유국의 '석유 무기화'로 촉발됐던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약 50년 만에 재현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반복되는 '에너지 무기화' 논란…1970년대 '석유 무기화' 데자뷔?

최근 화석연료 가격 폭등 현상을 둘러싸고 불거진 '에너지 무기화' 논란은 1970년대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줬던 '오일 쇼크'와 유사점이 있다.

1973년 10월 발생한 1차 석유 파동은 페르시아만 산유국들이 미국 등 서방국에 대해 석유 금수 조치와 함께 원유 판매가를 대폭 올리면서 점화됐다.

이스라엘과의 4차 중동전쟁에서 패한 아랍 산유국들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 등에 대해 '석유 무기화' 전략으로 보복한 것이다.

이로 인해 1973년 9월 말 배럴당 2달러대 중반이던 국제 유가(사우디아라비아의 아라비안 라이트 기준)는 1974년 1월 11.6달러로 무려 4배 이상 폭등했다. 당시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47%였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통화량 팽창 정책으로 아슬아슬하던 인플레이션 추세는 중동 산유국의 급격한 유가 인상 충격으로 폭발했다.

1974년 주요 선진국들은 두 자릿수 물가상승과 마이너스 성장이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났다. 같은 해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1%, 경제성장률은 -0.5%였다.

2차 석유파동은 이란 혁명이 기폭제가 됐다.

1979년 2월 발생한 이란 혁명으로 친서방 기조이던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이란 이슬람공화국이 탄생했다.

시아파 종교지도자이던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실권을 장악한 뒤 미국과의 단교를 선언하고 원유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이 여파로 1978년 초 배럴당 13달러대이던 국제 유가는 1981년 10월 38달러대로 치솟았다.

두 차례에 걸친 석유 파동이 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은 막대했다.

1970∼80년까지 미국의 연평균 인플레이션은 7%를 넘었고, 1974년과 1979년, 1980년의 물가상승률은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같은 시기 미국 내 실업률은 6∼8%에 달했다. 2차 석유 파동 충격이 확산하던 1982년에는 실업률이 10.8%까지 상승했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물류 대란과 원자재 가격 급등 등이 겹쳐 인플레이션이 확산하는 지금의 현상이 1970년대와 유사하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올 9월까지 5개월 연속 5%를 넘었고, 9월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PPI)는 10.7% 상승하면서 2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이 되고 있다"며 "겨울철 한파가 예상보다 강할 경우 유가가 100달러 이상까지 오를 수 있고, 이는 글로벌 경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과 서유럽에서는 최근 화석연료 가격 폭등의 배후에 천연가스를 무기화하려는 러시아의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유럽 천연가스 수입량의 50%를 차지하는 러시아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천연가스 공급 물량을 교묘히 조절하고 있다는 것이다.

급등한 천연가스 가격은 대체재라 할 수 있는 석유와 석탄 가격까지 연쇄적으로 밀어 올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자비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며, 유럽의 자멸적인 탄소중립 정책이 에너지 위기를 초래했다고 꼬집었다.

호주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호주산 석탄 금수 조치 여파로 중국이 심각한 전력난에 처한 것도 에너지가 치명적 무기로 작용할 수 있는 사례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 "유가 100달러 넘을 것"…스태그플레이션 판단은 엇갈려

현 상황을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의 재현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판단이 엇갈린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하버드대 교수인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과 케임브리지대 학장이자 핌코의 전 최고경영자(CEO)인 모하메드 엘-에리언 등은 인플레이션 상승과 실망스러운 경제 성장을 지적하며 1970년대와 닮았다고 경고한다.

서머스 전 장관은 "기록적인 노동력 부족과 20%에 달하는 집값 상승률, 8년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른 원유 가격, 재정 완화 정책에 관여한 정부 등 모든 것이 인플레이션의 징후를 보인다"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치솟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올겨울이 북극 진동과 라니냐 등의 영향으로 매우 추울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악재다.

BofA는 "날씨가 국제 에너지 시장의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며 "겨울철 한파가 예상보다 강할 경우 유가가 2014년 이후 처음으로 100달러 이상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지나친 위기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요국의 인플레이션 추세가 우려할 수준이긴 하지만 두 자릿수까지 치솟았던 1970년대만큼 심각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경제성장률도 마찬가지다. 골드만삭스는 올해와 내년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5.6%, 4.0%로 제시했다.

반면 스태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던 1974년과 1975년의 미국 경제성장률은 각각 -0.5%, -0.2%였다. 1982년에는 -1.8%까지 떨어졌다.

호주 일간 디오스트레일리안은 22일 "치솟은 화석연료 가격이 경기 회복세를 둔화시킬 수는 있지만 현 상황을 스태그플레이션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짚었다.

김효진 KB증권 연구원은 "연말을 고비로 에너지 가격은 하향 안정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내년 1분기 이후 미국 등 주요국의 물가상승률이 하락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반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높은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파월 의장은 22일 국제결제은행(BIS) 주최로 열린 온라인 콘퍼런스에서 "전체적인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고 우려했다고 뉴욕타임스(NYT)와 로이터 통신 등이 전했다.

파월 의장은 "공급 부족과 높은 인플레이션은 과거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래 갈 것 같다.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라며 "공급망 병목이 더 길어질 위험성이 분명해졌다. 이는 더 높은 물가상승률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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